영화로 보는 5분 근현대사 · 시즌2 · EP.32
피키 블라인더스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 — 참호의 악몽을 안고 고향에 돌아온 젊은이들은, 약속된 ‘영웅의 나라’ 대신 뒷골목을 택했다.
★ 8.8 ·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 (2013~2022, BBC 제작·넷플릭스 방영, 킬리언 머피 주연) · 역사배경: 1919~1930년대 영국 버밍엄

1막 · 영웅이 살 만한 나라 — 1918년의 약속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영국에서만 군인 약 90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총리 로이드 조지는 선거 유세에서 약속했다. 우리의 과제는 영국을 “영웅들이 살 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살아 돌아온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은 그 말을 믿었다.
현실은 달랐다. 전쟁 특수가 끝나자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1921년 실업자는 2백만 명을 넘었다. 스페인 독감이 휩쓸고 지나갔고, 많은 참전 용사들이 ‘셸 쇼크’라 불린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드라마의 주인공 토머스 셸비도 프랑스 땅굴 부대 출신으로, 밤마다 참호의 소리를 듣는 인물이다.

2막 · 진짜 피키 블라인더스 — 1890년대 버밍엄의 거리
피키 블라인더스는 실제로 존재했다. 다만 드라마보다 한 세대 앞선 1880~1900년대, 버밍엄의 가난한 동네 스몰히스 일대에서 활동한 거리 갱단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챙 달린 납작 모자(피키 캡)와 맞춤 재킷, 나팔바지가 그들의 상징이었다.
모자 챙에 면도날을 꿰매 상대의 눈을 베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나중에 붙은 전설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면도날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마구 쓸 수 있을 만큼 싸지 않았다. 실제 피키 블라인더스는 소매치기, 폭행, 경찰과의 싸움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1910년대가 되면 더 조직적인 범죄 집단들에 밀려 사라졌다.

3막 · ★ 경마장의 전쟁 — 1920년대의 진짜 갱단
드라마가 그리는 1920년대 버밍엄의 진짜 주인은 빌리 킴버가 이끈 ‘버밍엄 보이스’였다.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이들의 돈줄은 경마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경마장 밖에서 현금으로 돈을 거는 것이 불법이었다. 그래서 뒷골목 불법 도박장과 경마장의 ‘자릿세’가 거대한 사업이 됐다.
1921년 무렵 킴버의 패거리와 런던의 사비니 형제 패거리 사이에 경마장을 두고 ‘경마장 전쟁’이 벌어졌다. 면도칼과 권총이 오갔고, 신문은 연일 이 싸움을 보도했다. 드라마는 피키 블라인더스라는 옛 이름에 이 1920년대의 실제 갱단 전쟁을 섞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4막 · 처칠, IRA, 그리고 총파업
드라마에는 실존 인물이 여럿 나온다. 시즌1에서 셸비 가문에 경찰을 보내는 사람은 당시 전쟁부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이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영국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무기 밀거래와 IRA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된다.
1925년 재무장관 처칠은 파운드를 전쟁 전 가치로 금에 묶는 금본위제 복귀를 결정했다. 수출 산업은 타격을 입었고, 탄광주들은 임금을 깎으려 했다. 1926년 5월, 광부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170만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영국 역사상 유일한 총파업이었다. 정부는 군대와 장갑차를 거리에 세웠고, 파업은 9일 만에 끝났다.


5막 · 대공황과 파시즘의 그림자
1929년 미국 월가의 주가 폭락은 대공황이 되어 영국까지 덮쳤다.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토머스 셸비는 국회의원이 되고, 실존 인물인 오즈월드 모슬리와 맞선다. 모슬리는 1932년 ‘영국 파시스트 연합’을 만들어 검은 셔츠 부대를 이끈 인물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세대가 겪은 실업과 분노, 무너진 약속.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유럽 곳곳의 극단주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바로 그 분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다. 버밍엄 뒷골목의 이야기는 그렇게 유럽 전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영화 vs 진짜 역사
| 항목 |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 | 진짜 역사 |
|---|---|---|
| 셸비 가문 | 1919년 버밍엄을 장악한 집시 혈통 갱단 | 가상의 가문 — 피키 블라인더스는 1890년대 실재한 거리 갱단 |
| 모자 속 면도날 | 피키 캡 챙에 면도날을 꿰맴 | 후대에 붙은 전설일 가능성이 크다 |
| 빌리 킴버 | 셸비 가문의 경쟁자 | 실존 인물 — 1920년대 ‘버밍엄 보이스’의 두목 |
| 처칠의 등장 | 전쟁부 장관으로 갱단과 거래 | 처칠은 1919~21년 실제 전쟁부 장관 — 갱단과의 거래는 창작 |
| 오즈월드 모슬리 | 토머스 셸비의 적수 | 실존 인물 — 1932년 영국 파시스트 연합 창설 |
🌏 마무리 — 약속이 깨진 자리
토머스 셸비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의 그림자는 진짜다. 열아홉 살에 참호로 가서 스물셋에 돌아온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일자리도 치료도 주지 못했다.
〈피키 블라인더스〉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멋진 옷과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거대한 역사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몫을 챙기려 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옳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영국을 영웅들이 살 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 1918년 11월 연설
오늘도 동료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 더 깊이 — 자료·도서
-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 (2013~2022) — 스티븐 나이트 각본, BBC 제작 —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로 방영
- Carl Chinn, 《Peaky Blinders: The Real Story》 (2019) — 버밍엄 역사학자가 쓴 실제 갱단의 역사
- Philip Gooderson, 《The Gangs of Birmingham》 (2010) — 19세기 말~20세기 초 버밍엄 갱단 연구
- A.J.P. Taylor, 《English History 1914-1945》 (1965) — 전간기 영국사의 고전
- Encyclopaedia Britannica — General Strike of 1926 · Oswald Mosley 항목
이미지: 실제 회화·사진은 Wikimedia Commons(퍼블릭 도메인/자유 라이선스), ‘AI 시네마틱’ 표기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AI 재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