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5분 유럽사 · EP.12
신의 군대는 어떻게 이단이 되었나 — 템플 기사단
가난을 맹세한 수도사이면서 칼을 든 전사. 예루살렘 순례자를 지키겠다고 시작한 작은 무리가, 어떻게 유럽 최대의 금융 조직이자 교황 직속의 군대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정점에서, 어떻게 하룻밤 만에 무너졌을까.
★ — · 1119년 창설부터 1314년 해산까지, 영광과 몰락이 한 몸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들어가며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새벽, 프랑스 전역에서 같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무장한 왕의 병사들이 수도원 문을 부수고 들어가 기사들을 끌어냈다. 죄목은 신성모독, 이단, 우상숭배. 끌려간 이들은 200년 가까이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던 전사들, 템플 기사단이었다.
가난을 맹세한 수도사이면서 칼을 든 전사. 예루살렘 순례자를 지키겠다고 시작한 작은 무리가, 어떻게 유럽 최대의 금융 조직이자 교황 직속의 군대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정점에서, 어떻게 하룻밤 만에 무너졌을까. 오늘은 영광과 몰락이 한 몸이었던 사람들 이야기다.

1. 가난한 기사들의 시작
1119년, 예루살렘은 1차 십자군이 막 점령한 직후였다. 도시는 기독교 손에 들어왔지만, 그곳까지 가는 순례길은 여전히 죽음의 길이었다. 강도와 약탈자가 들끓었고, 무사히 도착하는 순례자보다 길에서 죽는 순례자가 많았다.
위그 드 파앵을 비롯한 아홉 명의 기사가 모였다. 그들은 예루살렘 왕에게 한 가지를 약속했다. 순례자를 지키겠다고. 왕은 그들에게 솔로몬 성전 터에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서 이름이 나왔다. "성전(Temple)의 기사들." 처음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말 한 마리에 두 사람이 함께 탔다. 기사단의 초기 인장에 한 말에 두 기사가 올라탄 그림이 새겨진 이유다.

2. 교황의 군대, 유럽의 은행
전환점은 1129년이었다.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성직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이 무명의 기사단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교회는 그들에게 공식 인가를 내렸고, 곧이어 파격적인 특권이 따라왔다. 템플 기사단은 어떤 왕이나 영주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오직 교황에게만 책임진다. 세금도 면제, 통행료도 면제.
이 면세 특권이 기사단을 거대하게 키웠다. 유럽 곳곳의 귀족들이 영지와 재산을 기부했고, 기사단은 그 재산을 굴리기 시작했다. 순례자가 출발 전 자기 나라 지부에 돈을 맡기면, 예루살렘에 도착해 증서를 보여주고 현금을 받았다. 현금을 들고 다니다 강도당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늘날 수표와 신용장의 원형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으로, 기사단은 사실상 중세 유럽 최초의 국제 은행이 되었다.

3. 전장의 백색 망토
은행가이기 전에 그들은 전사였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망토는 십자군 전장에서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규율은 가혹했다. 후퇴는 금지였다. 적군이 자기 부대보다 세 배 많지 않은 한, 템플 기사는 등을 돌릴 수 없었다.
1177년 몽기사르 전투에서 소수의 템플 기사단이 살라딘의 대군을 격파한 일은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용맹이 1187년 하틴 전투에서는 비극이 되었다. 예루살렘 왕국 군대가 살라딘에게 궤멸당했고, 포로가 된 템플 기사들은 거의 전원 처형되었다. 살라딘은 이들을 가장 위험한 적으로 여겨 살려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4. 무너지는 명분
예루살렘을 잃자 기사단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291년 십자군 최후의 거점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성지를 지킨다"는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 기사단은 키프로스로, 다시 유럽 본토로 후퇴했다.
문제는 명분은 사라졌는데 재산은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지킬 성지가 없는 거대한 부, 어떤 왕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무장 조직. 이것은 곧 군주들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한 사람,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던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게는 더더욱.
5. 13일의 금요일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나 있었고, 템플 기사단에게 진 빚도 컸다. 그에게 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그는 프랑스 전역의 템플 기사들을 일제히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문이 이어졌고, 기사들은 악마숭배와 신성모독을 "자백"했다. 대부분 고문 끝에 나온 강요된 진술이었다. 1314년, 마지막 총장 자크 드 몰레는 화형대에서 자백을 철회하며 자신과 기사단의 결백을 외쳤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불길 속에서 교황과 왕을 신의 심판대로 부른다고 저주했고, 두 사람은 그해 안에 모두 죽었다. 교황은 이미 1312년 기사단 해산을 선포한 뒤였다. 200년의 역사가 그렇게 끝났다.

마치며
템플 기사단의 몰락에 정말 이단의 죄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무너진 진짜 이유는 신앙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었다는 것.
지킬 성지가 사라진 군대, 어떤 권력에도 속하지 않은 부. 명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 부와 힘뿐일 때, 그것은 방패가 아니라 표적이 된다.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날이 된 유래를 이 사건에서 찾는 이들이 많은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명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 부와 힘뿐일 때, 그것은 방패가 아니라 표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