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쓰는 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블로그 쓰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코딩 못 하는 문과 임원이 클로드 스킬(Skill)로 자기 전용 장문 콘텐츠 생산 도구를 만든 이야기.

01. 시작 — 새벽 4시, 저는 한 줄만 쳤습니다

요즘 제 블로그 한 편을 쓰는 데 보통 3~4시간이 걸렸습니다. 소재 정리, 목차 잡기, 본문 쓰기, 이미지 프롬프트 만들기, HTML 변환, 티스토리 업로드. 각 단계마다 클로드와 주고받는 대화가 수십 번씩 오갔습니다.

그런데 지난 새벽, 저는 터미널에 딱 한 줄을 쳤습니다.

수현: /axon long "코셀루고 성인 승인이 우리에게 남긴 것"
클로드: 📝 리서치 시작합니다... / 🧩 목차 구성 중... / ✍️ 본문 작성 중... / 🎨 이미지 프롬프트 3개 생성... / 📦 HTML 빌드 완료.

23분 뒤, 제 앞에는 티스토리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장문 블로그 초안 한 편이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키보드에 20글자 남짓 치고, 커피 한 잔 내린 것뿐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비밀 — 제가 직접 만든 /axon long이라는 클로드 스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02. 개념 — 스킬(Skill)이란, 쉽게 말해 '내 전용 AI 매뉴얼'입니다

먼저 이 개념을 짚고 가야 합니다. 클로드에서 말하는 스킬(Skill)이란 뭘까요?

저는 처음에 "플러그인 같은 건가?" 싶었는데, 실제로 써보니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일반 프롬프트: "블로그 글 써줘. 4050 직장인 눈높이로. 이미지도 3장 넣고 HTML로. 톤은 따뜻하게..." → 매번 이걸 설명해야 함.

스킬(Skill): /axon long "주제" → 모든 규칙이 자동 적용, 리서치 + 본문 + 이미지 + HTML까지 자율 실행.

즉, 자주 쓰는 복잡한 프롬프트와 일련의 작업 순서를, 한 줄 슬래시 커맨드로 압축해놓은 '나만의 매뉴얼'이 스킬입니다. 클로드 코드나 클로드 데스크톱이 그 매뉴얼을 읽고 스스로 단계별로 움직여줍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스킬은 '대화'가 아니라 '실행'입니다. 채팅으로 묻고 답하는 게 아니라, 정의된 워크플로우를 클로드가 자율적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AI에게 일을 시키는 기술에서 → AI에게 내 회사의 SOP를 심는 기술"로의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03. 왜 'long' 이었나 — 숏폼은 쉬웠습니다. 롱폼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AXON이라는 광고·콘텐츠 생산 플랫폼을 회사 안에 만들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숏폼 영상, 카드뉴스, 블로그 카드 같은 다양한 자동화 스킬이 있었습니다. 짧은 건 잘 나왔습니다. 문제는 장문이었습니다.

장문 블로그가 어려운 이유

구조가 무너집니다. AI에게 "긴 글 써줘" 하면 어디선가 반드시 톤이 헐거워지고, 중반부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사실 확인이 허술합니다. 리서치 없이 장문을 쓰면 문장은 멋진데 내용이 빈 '모래성 글'이 나옵니다.
이미지 프롬프트가 따로 놉니다. 본문 톤은 세피아인데 이미지는 갑자기 네온 사이버펑크로 튀어버립니다.
마지막 HTML 변환이 제일 피곤합니다. 티스토리 붙여넣기용 HTML로 만들려면 인라인 CSS까지 챙겨야 하는데, 이게 매번 깨집니다.

그래서 저는 /axon long이라는 스킬을 만들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AXON 안의 장문(Long-form) 콘텐츠 전용 스킬'입니다.

04. 구조 — 스킬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스킬은 복잡한 코드가 아닙니다. 파일 하나입니다. 제 맥 안에 이런 경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 스킬 파일 위치: ~/.claude/skills/axon-long/SKILL.md

그 파일 안에는 제가 원하는 블로그 제작 규칙과 순서가 자연어로 쭉 적혀 있습니다. 대략 이런 식입니다.

name: axon-long
description: "주제 한 줄을 받으면, 리서치 → 목차 → 본문 → 이미지 프롬프트 → HTML까지 장문 블로그 한 편을 완성하는 스킬"

실행 순서: 1. 리서치: 웹 검색 + 내 노션 과거 글 톤 참조. 2. 목차: 임단장 시리즈 포맷(훅 → 5~7섹션 → 맺음말). 3. 본문: Pretendard 기반, 4050 눈높이, 인문학적 비유. 4. 이미지: 크래프트 페이퍼 + 세피아 톤 3장. 5. HTML: Toss Bank 스타일, 티스토리 업로드용 단일 파일.

보시는 것처럼 코드가 아니라 '문서'입니다. 제가 평소 블로그 쓸 때 지키던 규칙을 문장으로 풀어 적어놓은 것뿐입니다. 클로드는 이 매뉴얼을 읽고 순서대로 실행합니다.

저는 이게 문과 출신 임원들에게 AI 자동화의 진짜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딩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건 원래 "규칙과 절차를 문서로 정리하는 일"이잖아요? 관리·기획 업무에서 수십 년 해오던 그 일을, 스킬 파일 한 장에 옮겨 적으면 그게 바로 AI 자동화입니다.

05. 실전 — 실제로 돌려봤습니다, 23분의 기록

이론은 그만 이야기하고, 지난주 제가 실제로 /axon long을 돌린 장면을 그대로 옮겨드립니다.

⏱ 00:00 — 입력: claude > /axon long "코셀루고 성인 승인이 우리에게 남긴 것"

⏱ 00:30 — 리서치 시작: 클로드는 스스로 웹 검색을 몇 차례 돌리며 KOMET 임상 결과, FDA 승인 날짜, 국내 급여 현황을 모아옵니다. 동시에 제 노션의 END NF 카테고리 과거 글을 읽고 톤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 04:12 — 목차 제안: 터미널 화면에 8개 섹션 목차가 뜹니다. 제가 "OK"라고 한 글자만 치면 다음 단계로 갑니다. 보통은 그냥 넘어가는데, 가끔 "6번 섹션을 더 희망적으로 바꿔줘" 같이 한 번만 개입합니다.

⏱ 16:50 — 본문 + 이미지 프롬프트 완성: 본문이 쭉 뽑혀 나오고, 본문에 맞는 이미지 3장의 영문 Nanobanana 프롬프트까지 같이 출력됩니다. 제가 따로 이미지 스타일을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크래프트 페이퍼 + 세피아 톤으로 일관됩니다. 스킬 파일에 그렇게 적어뒀기 때문입니다.

⏱ 23:04 — HTML 파일 생성: Toss Bank 스타일, Pretendard, 인라인 CSS, 모바일 대응까지 다 담긴 단일 HTML 파일이 output/ 폴더에 저장됩니다. 저는 그걸 복사해서 티스토리 HTML 편집기에 붙여넣기만 하면 끝입니다.

솔직한 고백: 첫 실험에서는 23분이 아니라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킬 파일 자체를 다듬는 데 시간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한 번 완성된 스킬은, 이후로는 매번 23분짜리 자산이 됩니다. 한 번 만들어두면 계속 쓴다는 게 스킬의 본질입니다.

06. 진실 — 다만, 이것만은 솔직하게 짚고 갑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늘 지키려는 원칙이 있습니다. AI가 마법처럼 다 해주는 것처럼 쓰지 말자. 실제로 그렇지 않으니까요.

/axon long 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주제가 모호하면 결과도 모호합니다. "AI 이야기 써줘"처럼 추상적인 한 줄은 결과물도 평범해집니다. 주제는 좁을수록 좋습니다.
사실 확인은 여전히 제 몫입니다. 특히 의료·법률·금액이 나오는 글은, 클로드가 아무리 리서치를 해도 제가 최종 검증합니다.
'저만의 한 문장'은 여전히 제가 씁니다. 맺음말의 울림, 제목의 훅, 독자를 붙잡는 첫 문장. 이건 기술이 대체 안 됩니다.
스킬도 낡습니다. 제 블로그 톤이 변하면 스킬 파일도 같이 업데이트해줘야 합니다. 살아있는 문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axon long을 "내 손을 대신하는 AI"가 아니라, "내 초안 작성자(assistant)"로 부릅니다. 첫 80%를 23분에 만들어주고, 나머지 20%에 제가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조수. 그게 정확한 역할입니다.

07. 맺음말 — 기술이 아니라 '습관'을 옮겨 담는 일

스킬을 만들면서 제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이게 기술 작업이 아니라 '성찰 작업'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블로그 쓸 때 어떤 순서로 움직이지?" "나는 왜 이 포맷을 좋아하지?" "나는 독자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지?"

이걸 글로 쓰다 보면, 그동안 저도 모르게 해오던 제 스타일이 또렷이 보입니다. 그 순간, 그걸 그대로 문서에 옮겨 적으면 그게 스킬입니다. 제가 은퇴해도 이 문서만 있으면 누구든 저의 블로그 톤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서양사 전공자 입장에서 이야기 하나만 덧붙이자면, 중세 유럽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필사실)이 생각났습니다. 거기 수도사들은 한 권의 성서를 베껴 쓰며, 그 안에 자기 시대의 주석을 여백에 달았습니다. 그 주석이 쌓여 '규칙'이 되고, 다음 세대가 그 규칙을 그대로 물려받았지요.

AI 시대의 스킬이 딱 그 주석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하는 업무의 '여백 주석'을 잘 적어두면, 언젠가 그게 여러분의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자산은 코딩이 아니라 당신의 업무 감각과 문장력으로 만들어집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에 한 줄을 칩니다. /axon long "..."

그리고 커피를 내립니다. 그 사이, 제 블로그는 혼자서 자라고 있습니다. 😊

임수현(수현) · KT M&S 유통플랫폼사업단장 · 고려대 서양사학과 · END NF 신경섬유종 환우회 회장

[이미지 1~3 - 별도 처리 필요]

태그: 대기업임부장의AI이야기, 사학과임원의AI이야기, Claude, ClaudeSkills, AXON, 블로그자동화, 4050직장인, AI실전활용, 임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