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 구작가님의 『그래도 괜찮은 하루』, 그리고 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람
2026. 3. 26.
INTRO — 귀가 큰 토끼를 아시나요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우고, 수줍게 웃고 있는 토끼 한 마리. 이름은 '베니'입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만나셨을 수도 있고,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마주친 적 있을 거예요.
이 토끼가 왜 귀가 그렇게 큰지 아시나요? 자기 대신 소리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거든요.
베니를 그린 사람, 구작가(구경선) 님. 오늘은 이분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는 책 리뷰만은 아닙니다. 이 분이 우리 END NF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지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세상에 전해주었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씁니다.
STORY — 소리 없는 세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소녀
구작가님은 두 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잃었습니다.
세상이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한 소녀. 나중에야 자기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던 소녀는 대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엄마의 입모양을 읽으며 세상과 조금씩 소통하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엄마는 혀가 굳지 않도록 입술 주변에 설탕을 묻혀 혀를 움직이게 했고, 자기가 말할 때 목에 손을 가져다 대게 해서 소리를 익히도록 했다고 해요. 같은 단어를 수천 번이고 반복해서 알려준 엄마.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세상의 방패이자, 선생님이었던 엄마.
그리고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망막색소변성증.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유전성 질환. 결국에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고, 아직까지 완전한 치료법도 없는 병입니다. 소리를 잃은 뒤에, 이제 빛마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어요.
BOOK — 절망 대신 버킷리스트를 적었습니다
보통이라면 무너졌을 겁니다.
그런데 구작가님은 달랐어요. 절망하고 좌절하는 대신, 눈이 보이는 그날까지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 소개팅 해보기. 헤어진 친구 찾기. 운전면허증 따기. 가족여행 가기.
대단하지 않은 소박한 일상들이 그녀가 바라는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구작가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5)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행복합니다." — 구작가, 『그래도 괜찮은 하루』 중에서
이 한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자신의 장애는 어쩌면 축복이자 기회라는 담담한 고백. 당연한 것이 자신에게는 없었기에 더 감사할 수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감각들을 최대한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의 고백.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도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권의 책을 펴내며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그래도 괜찮은 하루 (위즈덤하우스, 2015)
📖 베니의 컬러링 일기 (위즈덤하우스, 2015)
📖 엄마, 오늘도 사랑해 (위즈덤하우스, 2017)
📖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위즈덤하우스, 2020)
📖 하나님, 듣고 계시죠? (두란노, 2020)
📖 사랑을 쓰다 (두란노, 2021)
END NF × 구작가 — 지후의 이야기를 그려준 사람
여기서부터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구작가님은 우리 END NF(신경섬유종증 환우회) 가족들에게 특별한 분입니다.
이전 글(#009)에서 저는 둘째 아들 지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2008년에 태어나, 신경섬유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미국까지 오가며 치료제를 찾아 헤맨 이야기. 그 글에 삽입된 인스타툰,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까요?
그 인스타툰을 그려주신 분이 바로 구작가님입니다. (@hallogugu — 대국민 희귀·난치성질환 인식개선 캠페인 인스타툰)
지후가 태어난 이야기, 병원에서 처음 진단받던 날, 6개월간 논문을 뒤지던 밤들, 미국의 닥터 켄트, 4년의 여정, 그리고 드디어 편히 잠드는 아이. 그 모든 장면들을 구작가님이 따뜻한 그림으로 담아주셨어요.
들리지 않고, 보이는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 분이.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그려주셨습니다.
대국민 희귀·난치성질환 인식개선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인스타툰은, 많은 분들이 신경섬유종이라는 병을 처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작가님의 그림이 가진 힘이었어요.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할 수 있는, 그 특별한 힘.
TOGETHER — 매번 우리 곁에 오시는 분
구작가님의 특별함은 인스타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END NF가 세미나를 열 때마다, 행사를 할 때마다, 구작가님은 늘 오십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불편하신 몸으로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우리 곁에 와주십니다.
거창한 인사말을 하시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셔서, 회원분들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시고, 따뜻하게 웃어주시고, 마음으로 안아주십니다.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우리 회원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분이 귀를 기울여주시고, 시야가 좁아지는 분이 우리를 바라봐 주시는 거예요. 그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구작가님은 희귀질환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입니다. 본인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안고 살아가시면서도, 같은 무게를 지고 사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구작가님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와 늘 함께 있는 분."
HOPE — 종양의 크기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이듯
#009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 종양의 크기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입니다."
구작가님을 보면 이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소리를 잃고, 빛을 잃어가면서도 멈추지 않는 분. 베니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책을 쓰고, 이모티콘을 만들고, 강연을 하고, 그리고 우리 END NF 회원들의 이야기를 그려주시는 분.
이 분의 삶 자체가 희망의 증거입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제목처럼, 구작가님은 매일매일 괜찮은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괜찮음을 우리에게도 나눠주고 계세요.
이 글을 읽으시는 END NF 회원분들께. 혹시 구작가님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셨다면, 꼭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두꺼운 책이 아닙니다. 예쁜 베니 그림과 함께 천천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그림 에세이예요.
읽다 보면 느끼실 겁니다. 이 분이 왜 우리 곁에 와서 웃어주시는지. 왜 지후의 이야기를 그려주셨는지. 왜 매번 우리 행사에 오시는지.
같은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구작가님은 그 위로를 그림으로, 글로, 그리고 존재 자체로 건네주시는 분입니다.
구작가님,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 END NF 가족들은 작가님의 매일매일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END NF 회장 임수현
🔗 구작가님 채널 & 도서 구매: 인스타그램 @hallogugu / 러브베니 공식 loveben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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