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 역사는 운명이 아니다 — 총균쇠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012 | 역사는 운명이 아니다 — 총균쇠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문과 출신 50대 임원이 현업에서 직접 쓰는 AI 실전 활용기. 인문학적 감수성과 AI 기술의 교차점에서.

인류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추적 보고서 / 단서: 인종이 아니라 환경이다
"왜 당신네 백인들은 그걸 만들었는데, 우리는 못 만들었을까요?"
1972년, 뉴기니 해변.
조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현지 정치인 얄리(Yali)로부터 이 질문을 받는다.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이, 이후 25년에 걸친 방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책 『총, 균, 쇠』가 탄생했다.
역사를 공부한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왜 어떤 사회는 배와 강철을 가졌고, 어떤 사회는 돌도끼를 쥐고 있는가?
인종이 아니라 환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한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한 건, 유럽인이 더 뛰어나서 아닐까?"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다. 틀렸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지능에는 우열이 없다. 인종은 문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환경(Environment)이다.

"유럽인이 더 똑똑해서?" → 틀렸다. 생물학적으로 지능의 우열은 없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작물과 가축이 같은 위도를 따라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쭉한 탓에 기후대가 달라져 전파가 막혔다.

동서 방향(기후 비슷 = 전파 쉬움) vs 남북 방향(기후 장벽 = 전파 어려움)
지리적 우연이 전파 속도를 갈라놓았다.
총보다 더 강력했던 무기: '균'
유라시아에는 가축화 가능한 대형 포유류 14종 중 13종이 있었다. 아메리카에는 라마 한 종뿐이었다. 사람도 태우지 못하는 동물이었다.
가축이 있으면 농업이 발달하고, 잉여 식량이 생기고, 잉여 식량이 생기면 전문가 계급(군인, 기술자, 관료)이 탄생한다. 그 위에 총이 올라가고, 문자가 올라가고, 국가가 세워진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 **균(Germs)**이었다.
수천 년간 가축과 밀착해 살아온 유라시아인들은 천연두, 홍역, 독감 같은 무서운 병원균들과 싸우며 집단 면역을 얻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 인구의 95%가 이 '보이지 않는 무기'에 스러졌다. 총보다 균이 더 강했다.

유럽인은 면역이 있었지만, 원주민은 없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생물학적 무기였다.
환경이 차이를 만들었고, 그 차이가 역사가 되었다.

지리적 환경 → 농업혁명 → 잉여식량 + 병원균면역 → 총·쇠·문자·국가 → 유럽의 세계 정복
나는 왜 이 책에 탐복했는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 해석을 접해왔다. 영웅사관, 계급사관, 문화사관, 종교사관…
그런데 다이아몬드 교수는 달랐다.
기존의 시야에 끌려가지 않았다. 현상 뒤에 있는 진짜 이유, 즉 본질(本質)을 찾아냈다. 그것도 수십 년의 현장 연구, 생물학·고고학·언어학·역사학을 넘나드는 공부, 그리고 수없는 대화와 경험을 통해.
이것이 인사이트다. 인사이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파악하기 위해 엄청난 공부와 대화와 경험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다이아몬드가 25년을 투자했듯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윗사람에게 지시를 받을 때, 팀에서 업무를 맡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개선과 혁신을 추진할 때. 그냥 시킨 대로 하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왜 이 일이 생겼는가. 이 일이 결국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가. 무엇을 바꾸어야 진짜로 해결되는가.
본질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게 된다.
총균쇠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역사를 보는 방식과, 내가 일을 대하는 방식이 결국 같은 뿌리에 닿아 있다는 걸.
AI 시대에도 본질은 사람이다
요즘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나는 AI를 도구라고 생각한다. 강력하고 놀라운 도구이지만, 도구다.
총균쇠의 논리로 보자면 — 총은 문명이 만든 도구가 아니라, 잉여 생산물이 허락한 사치품이었다. 총이 역사를 바꾼 게 아니라, 총을 만들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역사를 바꾸는 게 아니다.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람의 일에 제대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이 다음 역사를 만든다.
AI로 많은 것이 편해졌다. 하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일,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나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계속 해내가야 하는 진짜 일이다.
우리가 선택할 것
세계의 불평등은 특정 민족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13,000년에 걸친 지리적 환경의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넘어, 환경을 극복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가?"
원인을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나는 우리 직원들이, 그리고 내 아들들이 이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현상에 끌려가지 말고, 본질을 찾아라. 왜 이 일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이 진짜 해결책인지를 물어라.
역사는 운명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일도, 당신의 내일도 운명이 아니다.
총균쇠가 만든 어제를 이해하고, 내일을 설계하라.

역사는 운명이 아니다. 총, 균, 쇠가 만든 어제를 이해하고, 내일을 설계하라.
Based on Jared Diamond's "Guns, Germs, and Steel"